
–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 이지 ‘실행’ 이 아니라는 주장에 관하여
마르셸 뒤샹이 기성품을 전시회에 출품하고, 그것이 미술계에서 작품으로 인정되는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더이상 작가가 ‘직접’ ‘손으로’ ‘정성껏’ 만들었는지의 여부가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게 되었다. 팝아트, 개념미술 사조의 작가들은 ‘귀찮은 반복작업’ 을 기술자들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뒤샹, 앤디워홀 등에게는 ‘자신의 손으로 제작하지 않았다’ 는 컨셉 자체 또한 작품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로 조수에게 이른바 ‘외주’ 를 주는 것은 많은 작가들에게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념’ 이지 ‘실행’이 아니다> 라는 이 아이디어는
1) 패러다임의 교체 이지 그 자체로 성역화될 어떤 진리가 아니며
2) 구체적이지 못하다.
나는 이 아이디어가 2) 구체적이지 못하다 는 점에 조영남 대작사건의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개념’과 ‘실행’은 명확히 구분되는가? : “시계를 그려라” 라고 했을 때, 소재인 “시계” 만이 아이디어인 것인가? 혹은 “시계를 왼쪽 구석에 동그란 모양으로 그리기” 까지가 아이디어인 것인가? 아니면, “시계를 구불거리는 느낌으로, 어떠한 필압으로 그리기” 까지가 아이디어인 것인가? 우리는 ‘개념’과 ‘실행’ 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것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개념을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도 그것을 매개하는 수많은 개념들이 있고, 그것을 일일히 나열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조수는 input을 그대로 출력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발생하는 개인의 해석, 고유한 버릇, 화풍 등 많은 ‘부산물’ 이 발생한다.
대작작가 송기창은 ‘콘셉트는 조영남이 제공했다’ 고 하면서도, ‘조영남은 여러 대작작가들에게 그림을 몇 개 그려오라고 한 뒤, 가져온 그림들을 보고 그냥 작품을 사오는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기여도가 없었다’ 고 진술했다. 이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개념이고 실행인지가 모호해서 발생한 문제이다. 그리고 개념과 실행의 구분이 모호하다면, 사실상 우리가 ‘개념을 제공한 사람이 작가이다’ 와 같은 주장을 할 때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호해진다.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개념’과 ‘실행’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2) 따라서 ‘개념을 제공한 사람이 작가’ 라는 기준은 모호하다.
뒤샹과 앤디워홀의 경우에는 기성품, 실크스크린 등의 기계적이고 익명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외관상 개념과 실행이 어느정도 구분되는 것 처럼 보였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다(사실상 이 경우에도 엄격히 따지면 개념과 실행은 구분되기 힘들다). 이제 새로운 논의를 통해 기준을 수정, 보완할 시점이다.